본문 바로가기
영감 노트/미술

낭만주의와 미술 _ 고전주의자를 자처한 외젠 들라크루아

by Thincrescent 2021. 9. 27.

낭만주의 미술에 중요한 화가이지만 본인은 고전주의자를 자처했던 복합적인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에 신호탄을 알렸던 테오도르 제리코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이다. 1815년 고전주의자인 피에르 게랭의 화실에 들어가 제리코와 만난 그는 회화를 익히며 1822년 '단테의 배'로 데뷔를 하였다. 1824년 '키오스 섬의 학살'을 발표하며 낭만주의의 기수로 부상하였다. 1863년 사망 당시 총 9천 점이 넘는 작품을 남길 정도로 다작을 했던 화가다. 

 

제리코와 게랭의 화실에서 만나 우정을 나누며 1824년 제리코가 사망 후 신고전주의와 대조되는 낭만주의 화풍을 선도하였다. 제리코가 현실에 기반한 작품을 주로 남긴 것과 달리 들라크루아는 고대나 중세와 같은 과거, 신화와 문학적인 상상력과 환상을 주로 작품에 담아냈다. 두 사람이 낭만주의 화가로 대표되면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특히 들라크루아의 작품 곳곳에는 고전주의에 대표적인 미켈란젤로의 흔적과 낭만주의로 이어지는 루벤스의 색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그가 고전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어떻게 낭만주의를 이끄는 대표화가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 중 '단테의 배'는 들라크루아 특유의 문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리코의 대표작 '메두사호의 뗏목'이 현실을 반영한 그림인데 비해,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단테의 배'는 문학에서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에서 두 사람의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단테의 배'는 소재와 구도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선배 화가인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참고한 그림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적 주제라는 것과 고전적 구도, 인체의 표현과 어둡고 풍부한 색체 등이 차이를 보인다. 신고전주의 풍의 고전적 구도와 인체의 표현과 낭만주의 화풍의 어둡고 풍부한 색체, 거칠면서도 대담한 처리가 복합되어 독창적인 화풍을 보이는 작품이다. 

 

'키오스의 학살'은 오스만 투르크가 자행한 그리스인의 학살을 다룬 작품으로 당시 낭만주의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사건을 구성한 그림이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비참한 현실을 담아낸 작품은 전투에 패한 그리스인들의 끝도 없는 절망과 무력감만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고전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 지식인들은 추함에서 미를 끌어내는 작품, 절망에서 순수함을 끌어낸 작품이라 칭송하기도 했다. 특히 해당 작품은 신흥낭만주의 동풍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앵그르가 고전주의풍으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 '루이 13세의 서약'과 동시에 출품되어 고전파와 낭만파 비평가들의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은 낭만주의 작가로서 가장 큰 찬사와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바이런의 희곡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으로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 그의 특유의 정서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다. 사르다나 팔루스가 처와 첩, 시종 말과 개 모두를 살육한 뒤 자신 역시 분신자살한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바이런의 희곡에 숭고한 장면으로 서술된 내용인데 반해 들라크루아는 광기와 잔혹성, 관능이 난무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그려냈다. 이런 점이 당시에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7월 28일)' 작품은 가장 많이 알려진 들라크루아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프랑스혁명을 소재로 그린 금인데, 바리케이드와 동료의 시신을 넘어 구체제로 복귀하려는 부르봉 가의 샤를 10세를 타도하고 혁명에 참여한 분위기를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특정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알레고리로 표현한 여성을 통해 보편적 민주주의와 추상적인 혁명을 이미지로 그려낸 그림이다. 

 

그의 말년에는 파스텔과 수채화로 그린 하늘 습작 연작을 주로 그렸는데, 순간적인 빛의 효과와 색체에 집중하고 공간에 대한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며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제리코에 영향을 받아 낭만주의를 이끈 화가임에도 그와는 다른 소재로 현실을 반영한 낭만주의 사조를 보여준 화가이며, 수많은 그림들로 훗날에는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화가라는 점에서 그의 그림들은 현재까지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계몽주의 사상으로부터 시작된 동시대의 사조이지만 이성과 합리성(선과 형태 중시)을 중요하게 생각한 신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는 감성과 상상력(색체 중시)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에서 고전주의자를 자처하며 낭만주의 사조를 이끈 들라크루아의 작품 세계는 다른 낭만주의의 그림과 다른 그만의 시선과 세계를 충분히 담아내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서 중요한 시대의 화가라는 생각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