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리 푸젤리는 스위스 태생이지만 부정한 판사 명단을 고발하다 고국을 떠나 영국으로 정착하게 된다. 영국으로 정착하면서 영국식 발음에 맞춰 헨리 퓨슬리로 불렸다. 본격적으로 화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9년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고전 미술을 공부하였고, 특히 미켈란젤로에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실험적이고 충동적인 데생법을 연구하며 독특한 데생 작품을 여럿 남겼다.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악몽' 작품을 시작으로 북구 신화, 단테, 밀턴 등 문학작품과 세익스피어의 문학, 연극의 작품 등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작업했다. 1781년 제작된 '악몽'이 런던 왕립 아카데미에서 전시되며 명성을 얻었고, 이후 같은 주제의 다른 버전 총 4점을 제작하기도 했다. 기억과 욕망(성적 폭력성)이라는 주제를 드러낸 작품이라 전해진다. 퓨슬리는 꿈을 미술에서 가장 탐구되지 않은 분야 중 하나라고 보았고, 회화를 통해서 꿈의 계시적인 힘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퓨슬리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장면 등을 묘사하며 낭만주의적 인간상을 주제로 삼았다. 균형과 자제를 벗어난 인간미 넘치는 주인들에 매료되어 문학 작품을 미술 작품에서 새롭게 다루었다.
퓨슬리는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를 언급하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동시대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영국의 낭만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퓨슬리와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미켈란젤로, 뒤러,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의 화가들을 좋아했지만 아카데미의 미술을 배척했다. 다만 그의 독특한 그림은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채색 인쇄법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을 했으며 많은 그림에서 동판화에 펜과 잉크, 채색을 더하는 방식을 많이 활용하였다.
퓨슬리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꿈의 세계와 자유로운 문학적 인간상을 그려왔다면 윌리엄 블레이크는 변질된 기독교의 윤리나 학문, 과학 등을 비판하였고, 원시시대의 순수성 주제를 많이 남겼다.
두 화가가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영국 낭만주의 미술에 많은 영향을 남긴 인물로 현재에도 미술사에 중요한 화가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화가는 현재까지도 후배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며 본격적인 영국의 낭만주의를 열었던 선구자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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